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도요타가 테슬라와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파이낸셜 타임즈가 26일 보도했다. 20년간 축적한 연구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지능형 로봇 상용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요타가 연간 64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통해 공장 자동화를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로봇 40만대를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고생산책임자(CPO) 산하에 로봇 전담 조직을 구성하는 등 로봇 사업 추진 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투입 예정인 로봇 40만대 가운데 약 25만대는 도요타그룹 계열사와 협력업체에 배치할 예정이다. 그룹 내부 생산 현장에 우선적으로 도입해 기술을 검증하고 사업 확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도요타의 로봇 사업 확대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진출 움직임은 투자 유치에서도 나타났다. 도요타의 AI 로봇 사업에서 분사한 ‘월든 로보틱스(Walden Robotics)’는 지난 7월 3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기업가치는 11억달러로 평가됐다. 이 회사는 이미 북미 지역 도요타 공장에 범용 로봇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 4월 도쿄 도요타 아레나에서는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큐7(Cue7)’이 농구공을 다루고 골대에 공을 넣는 모습을 선보였다. 자체 개발한 50㎏급 휴머노이드 로봇 ‘엘리(Eley)’도 개발 중이다. 엘리는 공장 작업자의 동작을 관찰해 새로운 작업을 학습하도록 설계됐으며, 상자 사이에서 부품을 옮기는 것처럼 정교한 손동작이 필요한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AI 기술 확보에도 적극 추진 중이다. 도요타의 미국 내 연구 전문 기업인 ‘도요타 리서치 인스티튜트(TRI)’는 ‘상위 수준 의사결정(high-level decisions)’을 실제 로봇의 정밀한 동작과 실시간 모터 제어로 변환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에도 활용되고 있다.
도요타는 로봇 하드웨어뿐 아니라 AI 모델과 생산 공정을 통합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번스타인의 마사히로 아키타(Masahiro Akita) 애널리스트는 FT에 “도요타가 정교한 로봇의 자체 개발보다 로봇과 AI, 생산 공정을 결합해 우수한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강점을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도요타의 로봇 사업 강화가 중국 제조업체와의 경쟁과도 맞물려 있다고 진단했다. 도요타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겐타 콘(Kenta Kon) 체제에서 로봇 사업의 포부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은 공장 현장과 기술 분야 모두에서 중국과 경쟁하려면 대응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도요타는 2030년대 초 나고야 인근에서 일본 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신규 자동차 조립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새로운 생산 거점이 로봇과 AI를 활용한 제조 혁신을 추진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도요타가 보유한 기술력과 대량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2035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의 3~8%를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19만~54만대에 해당하는 규모다. 자동차 산업에서 축적한 생산 기술과 공급망, 품질관리 역량을 로봇 제조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가 로봇을 독립적인 대규모 수익 사업으로 키울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는 의견도 있다. 수소차와 자체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고체 배터리 등 기존 혁신 사업 가운데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거나 상용화가 지연됐다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도요타의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 책임자인 ‘도모히로 노미(Tomohiro Nomi)’는 올초 발표에서 자체 공장에 로봇을 배치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연간 약 10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도요타에 휴머노이드 로봇 판매가 당장 핵심 사업 규모에 버금가는 수익원이 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고 FT는 소개했다.
도요타 전직 임원은 FT에 ‘도요다 아키오(Akio Toyoda)’ 회장에 대해 “그는 자동차 전문가이지 로봇 전문가는 아니다”라며, 회사의 최우선 과제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사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도요타가 자동차 사업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 도요타 투자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성이 비슷하다는 가정 아래 휴머노이드 로봇 20만대를 판매하더라도 연간 자동차 생산량 1000만대에 비하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규모”라고 평가했다. 그는 “도요타의 핵심 자동차 사업이 잘되면 로봇 사업도 보상을 받는 분야로 평가되겠지만, 자동차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 로봇 사업은 본업에서 벗어난 불필요한 일로 치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도요타의 로봇 전략이 자동차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생산 자동화를 고도화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기술과 데이터를 외부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샤오미, XPENG 등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휴머노이드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가 이 시장을 계속 무시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도요타가 어떠한 방식으로 휴머노이드 시장에 진출하는 지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장길수 기자 ksjang@irobotnews.com